"기독교사여, 오늘도 동행하십니까?" - 배덕만 목사(기독연구원 느혜미야 연구원, 백향나무 교회 담임)

눅 9:28~43

1

본문의 내용: 변화산 사건.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용모가 변하고', '모세와 엘리야'가 옆에 서고, 하늘에서 '나의 아들, 택함 받은 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이 들린 사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자들이 제대로 인식하게 된 최초의 순간.

이전까지의 예수는 나사렛 목수 출신의 영력있는 종교 지도자에 불과하였음.

변화산 이후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빛나는 외모이며, 모세와 엘리야(역사상 가장 하나님에 가까웠던 인물) 이상의 존재

  → 이것을 받아 들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역사상 각 문화권 혹 각 민족의 복음 1세대는 왜 가정 및 사회에서 축출될 것을 감내하며, 엄청난 기회비용을 감내하며 복음을 받아들였는가? 바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cf)행2 "너희가 죽인 예수가 그리스도" : 변화산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설교를 할 수 있었음.


2

우리는 왜 성령 강림을 받아야 하는가? 

예수를 알기 위하여(X) 예수에 대한 지식은 유대인도, 이슬람인도 알고 있었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기 위하여(O)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곧 하나님이심을 알기 위하여 성령을 받아야 한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하나님께 직접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음성을 들었듯이, 우리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교회와 예배에 출석하고 있는 것.

오늘날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예수가 하나님이란 복음을 듣지 못하고, 그저 대를 이어서 혹은 문화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증가함. 기독교와 기독교인이 영향력있게 살지 못하는 이유.

우리는 매일, 일상 속에서 "변화산"을 늘 오르내려야 한다.

하지만 변화산이 실종된 오늘날. 매 주일과 예배가 변화산이지 않은 시대. = 무신론자인 그리스도인.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이렇게 살면 안된다.


3

산 위와, 산 밑

그 좋은 산 위에서 굳이 산 밑으로 내려오신 예수.

산 위: 계속 거하고 싶은 황홀한 공간. 베드로: "초막 셋을 짓되~"

산 밑: 귀신 들린 아이, 무너진 가정, 지옥같은 곳.

산 위에서도 산 밑에서도, 예수는 하나님이시며 예배 받으셔야 한다.

산 밑으로 내려가신 예수처럼 우리도 그 지옥같은 곳으로 돌아가 귀신들리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야 할 것이다.

로탕패스 정상부에 있는 작은 사원. 곳곳마다 저러한 장소가 나타났다. 내부에는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신의 사진이 놓여 있다.


로탕패스 정상부에서 마날리 반대편을 보면 이렇게 눈밭이 펼쳐진다. 8월의 설원!


로탕패스를 내려오는 길은 차량이 많지 않았다. 그 많은 차들은 모두 어디로...?

내려오면서도 계속해서 눈밭이 펼쳐진다. 그래도 도로에 제설작업은 잘 해두었기 때문에 올라갈때 경험했던 교통체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로탕패스를 완전히 건너오니 눈밭이 사라지고 녹음이 짙은 모습이 나타났다. 급경사면을 활용한 계단식 농경지도 나타나고,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폭포수도 나타났다. 짙은 안개와 구름이 더해져 매우 음산하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한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물론 마날리에 비해 굉장히 추운 날씨가 나타난다.

여행객 신고 사무소를 중심으로하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 먼저일지, 사무소가 먼저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 역원취락같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을의 이름은 '콕샤'라고 한다. 콕샤에 도착ㅎㄴ 시간은 저녁 6시 20분 경이었다.

콕샤에서 여행 승인절차가 마무리될때까지 작은 식당에서 난과 커리로 허기를 채웠다. 시간상으로는 저녁식사시간이었지만, 일정이 촉박해 식사라고 할 정도로 먹지는 못하였다.


일행을 태우고 로탕패스를 건너온 SUV.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다시 출발!

절벽이 매우 가파르고, 바닥은 비교적 평탄한 것으로 보아 빙하지형인 U자곡이라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스파로 가는 동안 길 옆으로는 체납 강(Chenab river)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았다. 경관을 남기지 못한 것은 참 아쉽다.


지스파의 한 여관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한 야식? 저녁식사?


원 계획대로라면 지스파에서부터는 캠핑을 시작하고, 이 지역을 답사해야 했지만, 일정이 많이 밀렸고, 날씨도 생각보다 많이 추웠기 때문에 계획이 전면 수정될 처지가 되었다. 이 날도 당초 계획과 달리 숙소에서 여정을 풀게 되었다. 그리고 무려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매우매우 추운 날씨 때문에 침낭만큼은 예정대로, 이 날 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날씨와 도로 등 여러 요인들이 맞아 떨어져 마날리를 떠나게 되었다. 아름다운 관광도시 마날리를 뒤로 하고, 로탕패스(Rohtang Pass)를 넘어가는 날. 히말라야 답사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숙소에서 8시 20분에 출발하였다.

로탕패스는 약 해발 4,000m정도 되는 고개로 힌두문화권과 불교문화권의 경계가 된다.

로탕 패스의 위치는

https://www.google.co.kr/maps/place/%EB%A1%9C%ED%83%95+%EB%9D%BC/@32.3719887,77.242089,2453m/data=!3m1!1e3!4m5!3m4!1s0x39047ef0b27a15ad:0xbfdd7e65efefc66b!8m2!3d32.3716426!4d77.2466221

이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스파는 저녁때에나 도착할 예정이었고, 최소 점심때까지는 변변찮은 것이 없을 길이라 도시락을 준비받았다. 감자, 삶은 계란, 딸기잼 바른 샌드위치, 바나나 하나, 그리고 주스(오렌지?)로 구성된 단촐한 도시락


로탕패스로 가는 길에 계곡 아래로 펼쳐진 장관.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같았다.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마 고도가 높아지고 응결고도에 도달하였기 때문에 내렸던 듯 하다. 그리고 이 비는...


이와 같은 교통체증을 만들어 내었다. 세 사진 모두 중간의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으로, 맨 윗 사진은 지나온 길을, 그리고 맨 아래 사진은 가야할 길을 찍은 사진이다. 녹색 풀밭 사이사이 회색으로 드러난 부분은 차도가 지나는 곳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트럭, 버스, SUV 등이 보인다.

가운데 사진은 휴게소 앞을 찍은 것이다. 수많은 차들이 중간정비를 하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휴게소 앞의 간이화장실. 화장실 앞에 떨어진 모자를 놓고 고뇌하던 답사팀 동기 ㅎㅎ

휴게소 앞에서 한 컷


산간에 내리던 비는 길을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렸고 차들이 빠지게 되면서 안그래도 안 좋은 도로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차 안에서 기다림에 지쳐 밖을 나와도 엄청난 강풍과 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


그래도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너무 멋있었다. 유럽, 뉴질랜드, 캐나다 등 풍경으로 유명한 그 어떤 곳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아름다운 자연이다.


산 중턱에 아까 잠시 휴식을 취했던 휴게소가 자그마하게 보인다.


노점상인에게 구운옥수수를 하나 사먹어봤다. 이 위에 라임즙을 발라 주어서 시크시큼하면서도 구운옥수수 특유의 달달한 향이 어우러진 맛이 났다. 한번은 먹어도 즐겨먹을 맛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강원도 찰옥수수 삶아먹는게 입맛인듯...ㅋ


도로에 길게 늘어선 여행객들과 차.


쌓였던 눈이 여름에도 채 녹지 않아 위에 먼지, 매연 등이 때처럼 끼어있다. 처음에는 겨울에 내린 눈이  지금껏 남아있는 것인 줄 알았다.


'층리' 의 모습이다. 좌하단의 SUV와 비교해볼 때 한 층 한 층의 두께와 규모가 매우 두껍고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상부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 찍은 사진. 거대한 바위가 조각조각 나 있었다. '기계적 풍화'에 의해 저렇게 부서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었다. 토르? 핵석?

로탕패스 정상부의 모습. 사면 오른쪽은 어느정도 시야가 확보되지만, 왼편은 구름이 짙게 끼어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맥을 기준으로 기후 차이가 극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눈으로 그리고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다. 길가에는 노란 천막, 텐트등이 줄지어 있었는데, 아마 여행객을 대상으로 상업을 하는 주민들이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으로 추측해 보았다. 실제 행인, 주민을 볼 수는 없었다.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무려 저녁 5시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