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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택 외5인, <공교육과 기독교>, 좋은교사

 공교육. 정말 많은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세 글자다. 애석하게도 공교육이라는 말을 들을 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학교폭력, 학생/교사 인권 문제, 입시경쟁, ‘정상화’가 필요한 대상(지금은 비정상이라는 얘기다.) 등이다. 해결해야하고 고쳐가야 할 것들로 가득한 공교육. 공교육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어 이 책을 읽어보았다. 물론 얇지 않은 두께로 인해 후회도 많이 해가며 책장을 넘겼다.

 책은 총 5개 국가의 공교육의 역사, 특히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대상으로서 공교육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5개 국가 중 4개 국가는 독일, 영국, 덴마크, 미국으로 그 역사에서 개신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던 나라이며, 각 국의 문화적 바탕에 기독교적 가치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은 개신교의 세력이 강한 나라들로, 종교개혁 이후 루터의 만인제사장론 등 기독교의 여러 교리나 가치에 의해 일반 대중에 대한 교육이 시작되고 확대되었다. 이후 산업화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교육이 제도화되고 세속화되는 변화를 거쳤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독교의 색채가 축소되었으며, 세속적 가치, 정치사회적 가치가 교육에서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 국의 기독교 교세가 점차 위축되고 있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는 수백 년 동안 삶의 기저를 이루어 온 기독교의 가치를 교육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공교육과 기독교의 밀접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개화기 이후 선교사 등에 의해 ‘공교육’의 틀이 급작스럽게 도입되었다. 물론 선교사들은 학교를 세우고 신식 교육을 전파하면서 기독교적 가치를 교육에 담아내고 싶어 했지만,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유교와 ‘출세’지향성 문화,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 교육정책으로 인해 그 시도가 좌절되고 말았다. 해방 후에는 개신교 성향의 학자들이 교육 정책을 설정하는 데 관여하였지만, 한국전쟁과 반공 정책으로 인해 또, 한민족 의식 속에 깊게 뿌리박힌 ‘출세’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개신교와 공교육 사이의 접점을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이 따랐다. 


 책장을 덮고 나니 한편의 교육사 책을 읽은 듯하다. 각 국의 교육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기독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이해와 함께 드는 질문은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이다. 서구의 여러 나라는 그 문화적 배경에 놓인 기독교적 가치로 인해 공교육과 기독교의 접점을 찾는 것이 용이했으며, 몇몇 나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공교육에 담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기독교의 교세가 많이 높아지긴 하였다만, 그에 못지않은 “안티”의 분노 혹은 경멸을 마주하고 있다. 과거제 이래로 이 민족을 지배하고 있는 출세 지향적 교육열의 거대함을 보게 된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공주의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왜곡된 한국의 교육관을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수백 년의 기독교 역사를 지닌 나라의 공교육 제도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교육과정에 특정 종교의 가치를 주입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길을 부단히 걸어온 한국 공교육에 대한 다른 차원의 왜곡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학교 교육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출세하는 것, 신분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기독교가 그동안 한국의 성장주의와 경쟁들을 ‘고지론’이라는 이름하에 부채질했음을 인정하고, 기독교의 가치는 무제한적인 성장과 경쟁이 아닌, 사랑과 용서를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 말해야 한다. 지나치게 왜곡된 교육에 대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국영수 위주의 입시교육은 분명 바르지 않다. 출세 지향적인 교육 역시 옳지 않다. 공교육의 역사를 짚어 볼 때, 공교육은 민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필요한 교양을 가르쳐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기독교사대회에서 쓰라린 아픔을 당한 적이 있다. 여러 대안학교 부스를 찾아갔더니 나의 ‘과목’을 물어보셨다. 수학교육과에 재학중이던 내 친구가 ‘수학교육과입니다.’ 라고 말을 할 때의 밝게 환영하던 얼굴, 수학교사의 필요함을 말하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침튀기며 말하던 반응과 내가 ‘지리교육과입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무심하던 얼굴과 옆에 있던 친구가 민망해할 만큼 다른 반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벗어난 대안교육을 하겠다는 학교들도 국영수 위주의 교육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국영수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거대한 이 공교육안에서, 우리는 왜 국영수를 벗어나야 하며, 국영수를 벗어나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철학, 윤리, 보건, 음악, 미술, 지리, 사회 등 수많은 교과목, 혹은 가치들 중에서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전수해야 할 것인지, 특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공교육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교사를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책에 서술된 각 국의 공교육 발전사를 보면, 공교육의 발전은 결국 교사 양성 제도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현재 한국의 중등교원 임용은 너무도 심각한 문제를 맞이하고 있다. 매년 수백 명, 수천 명의 임용적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학기짜리 기간제 교원 모집조차 수십 대 1의 경쟁률이 나타나고 있다. 교원의 수급이 어려웠을 시절의 제도가 현재까지 방치되어 있다. TO에 따른 눈치 싸움으로 지역과 과목을 정하고, 수십 대 1의 비인격적 경쟁을 뚫고 임용된 교사는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게 될까. 정정당당하게 너의 길을 걸으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학생에게 협동과 상생의 가치를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정말 엉망인지, 이 책을 읽고 난 감상이 그리 밝지는 못하다. 지금은 이것을 고민하는 것 보다, 임용고사를 조금이라도 더 준비해서 합격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것을 고민하는 것이 내가 교사가 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스쳤다. 임용고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도 나처럼 비관적이고 우울한 글들이 많다. 공교육의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어둡다. 공교육 제도도 온전하지 못하고, 공교육을 둘러싼 문화도 왜곡되어있고, 공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될 사람들은 어둡다. 기독교의 할 일이 참 많다.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공교육의 어두움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기대(허황된 꿈이 될런지도 모른다.)를 안고 이 글을 마친다.